이스라엘 순례기 #6 십자군의 요새 - 아코

2018-08-23 | 조회수 1160회





아코(아크레) 항구 전경.

 


점심을 든든히 먹고 아코를 향했다. 현지인들은 아코(Akko)라 부르고 영어로는 아크레(Acre)라 불리는 이곳. 이 글에서는 현지인들을 따라 아코로 정리해 본다. 아코는 기원전 10년 헤로데 대왕이 건설한 항구 도시로 중세 십자군 최후의 근거지였다. 1차 십자군 전쟁에서 예루살렘을 탈환한 십자군은 아코에 요새를 건설한다. 아코에 요새가 생기면서 뱃길이 열렸고 유럽의 순례자들은 배를 타고 이스라엘로 들어올 수 있었다. 순례자들이 많아지면서 순례길 보호 서비스와 병원, 식당, 숙소 등이 들어섰다. 한때 순례자들의 봉헌금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 되었다고도 한다. 정확한 사실은 아닐 수 있지만 그만큼 성지순례의 바람이 불었고 아코는 그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다. 200년 가까이 지속된 아코 십자군의 요새는 이슬람에 의해 함락되면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십자군의 요새 위에 오스만 제국이 요새를 세웠고 그 뒤 영국군이, 이스라엘 건국 후에는 경찰 본부가 세워졌던 곳이다. 건물 곳곳에 케이크의 층이 쌓이듯 다양한 건물이 겹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십자군 요새 모형. 요새답게 미로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현지 가이드 낙숀 갈(Nachshon Gal).

 

여기서 잠깐 이번 순례 가이드 낙숀 갈(Nachshon Gal)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스라엘 최고 명문 히브리대학을 졸업하고 IT 보안업계 등에서 근무하던 낙숀은 어느 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가이드를 선택했다고 한다. 세속 유다인(율법을 지키지 않는 유다인)이지만 성경과 율법, 이스라엘의 역사와 사회적 배경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그런 인물이었다. 영어로 진행됐기에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해박한 지식으로 순례 일정 동안 불편함 없이 잘 이끌어준 고마운 이다.

 


십자군이 강당 또는 식당으로 활용했던 곳.


 


강당의 천장 모습. 반원 아치가 교차하면서 십자가를 만들고 있다.


 


헤로데가 만든 항구 도시에 십자군의 요새가 들어섰고 오스만, 영국을 거쳐 이스라엘의 경찰서가 세워졌던 이곳이 요즘은 박물관으로 변하였다.


낙숀에 관해 길게 설명한 이유는 뒷받침되는 증거는 없지만 낙숀이 설명해준 흥미로운 이야기 때문이다. 뱃길이 열렸다고는 하지만 유럽에서 배를 타고 성지를 순례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괴혈병과 자연재해, 해적 등 목숨을 건 항해를 마친 순례자들은 초주검 상태로 아코에 도착했을 것이다. 아코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60km 정도. 나자렛, 갈릴래아, 카파르나움 등 성경 속의 수많은 지역을 순례하고 싶지만 집으로 돌아갈 일도 막막한 순례자들을 위해 아코에 있던 어떤 이는 독특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바로 미니 이스라엘이었다. ‘소인국 테마파크에 가본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요새 곳곳에 베들레헴, 나자렛, 갈릴래아, 예루살렘을 만들고기념도장까지 찍어줬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고고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것으로 순례자의 일기에서 이러한 내용이 발견됐다.

 

 

현지 가이드 낙숀이 아코 십자군 요새에 설치된 소인국 테마파크 - 이스라일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단지 가이드의 설명만 듣고 소개하기에는 찜찜한 점이 없지 않았지만 순례의 의미를 되새긴다는 점에서 소개한다.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까지 간 순례자가 예수님의 흔적을 확인하지도 않고 아코에서 기념 도장만 받고 다시 돌아갔다는 말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순례는 무엇일까?’ 본격적인 순례가 이뤄지는 첫날 마지막 일정에서 이번 순례 동안 풀어야할 숙제를 받은 느낌이었다.

 


아코의 해안 성벽에서 자신을 향한 시선을 의식해선지 한껏 무게를 잡으며 한 소년이 뛰어내리고 있다. 이스라엘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문화유산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신동헌 기자 david0501@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