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순례기 #7 고향을 향하는 발걸음 - 나자렛

2018-08-29 | 조회수 1812회




아코를 떠나 나자렛을 향했다. 나자렛. 드디어 아는 곳을 향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사실 순례기를 쓰면서 정리하고 자료를 찾아봤기에 카이사리아, 아코의 의미를 되새겼지 취재 현장에서는 전혀 느끼질 못했다. 사진 찍기에 바빴고 한 귀로는 영어를, 한 귀로는 통역을 듣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다음 목적지가 나자렛이며 하룻밤을 묵는다고 하니 여름방학을 맞아 외갓집에 놀러 가는 초등학생 때의 그 설렘이 떠올랐다. ‘예수님의 고향이니 내 고향이기도 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나자렛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사방이 산들로 둘러싸여 사람들의 왕래가 적었던 시골 마을. 구약에는 등장하지 않았고 신약에 와서야 성경에 이름이 나온 조그마한 마을. 오죽했으면 나타나엘이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겠는가.


그런데 차를 타고 나자렛을 향하면서 나의 기대는 깨졌다. 산을 뒤덮은 건물들과 혼잡한 도로 상황, 순례자로 북적였다. 물론 대도시는 아니지만 나자렛에 도착해 보니 순박한 소녀의 모습처럼 한적한 시골 마을을 기대했지만 여드름 가득한 사춘기 소년이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



나자렛으로 가는 길 도로에서 이슬람교의 기도 도구 미스바하 (misbahah)를 팔고 있는 상인.나자렛 주민 대부분은 아랍인들이다



분지인 나자렛은 산보다는 건물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 보이는 산을 넘어가면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나자렛을 만날 수 있다


숙소에 들어와 짐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은 후 나자렛의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해외 출장 때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밤거리를 헤매다 보면 다음 날 일정에 차질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해외버프를, 아니 은총을 받으니 괜찮다. 일행과 함께 밤거리를 다니며 야경을 촬영했다.


 
나자렛의 한 골목 모습. 순례자들이 찾지 않는 거리지만 이국적인 경치를 찾는다면 한 번쯤 걸어볼 만하다.


순례자가 아닌 여행자의 마음으로 나선 길이었다. 예쁜 야경을 촬영하겠다는 욕심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의 문이 굳게 잠겨 있었고 야경 촬영은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기도하는 이들을 만났다. 하느님의 섭리라 생각하고 싶다. 굳게 닫힌 문을 뒤로 하고 언덕을 향해 가던 중 우리 일행을 유심히 바라보는 한 수사님을 발견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던 그 수사님은 우리를 향해 손짓하며 들어오길 권했다. 영문을 모른 채 선한 미소에 이끌러 들어간 곳은 사랑의 선교회였다.



성체 앞에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 이의 뒷모습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콜카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 수도자들은 이날 성체 앞에 앉아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수사님의 이름도, 대화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생생하게 남아있다. 또한 여행자에서 잠깐이나마 순례자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성체 앞에 예수님을 향해 흠숭을 드리는 바로 이 장소가 어릴 때부터 듣고 배웠던 나자렛이라는 사실에 감격했다. 가난의 영성을 살아가는 수도자들과 함께 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나자렛 사랑의 수도회 모습.

 

숙소에 돌아와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를 정리하며 글을 썼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특히 숙소 난간에서 바라본 나자렛은 아름다웠다. 잠자는 소년의 모습 같았다. 지나가는 차 소리마저 없는 조용한 시간에 홀로 앉아 예수님께서 저곳 어딘가를 거니셨으리라 생각하니 눈을 뗄 수 없었다. 날이 밝도록 난간에 앉아 멍하니 나자렛을 바라봤다. 이 순간만큼은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주님 탄생 예고 성당과 나자렛 전경. 성당은 마치 나자렛을 환히 비추는 등대처럼 보였다

 

떠오르는 해를 만끽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첫 일정은 당연히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이었다. 5세기 초엽, 천사가 주님 탄생을 예고한 동굴 위에 기념 성당을 세웠다. 그러나 페르시아 군인들에 의해 파괴됐다. 십자군 시대 다시 지었지만 이슬람에 의해 파괴됐다. 그 후 1730년에 이르러서야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기념 성당을 세웠다. 지금의 성당은 1969년 완공됐다.


 
주님 탄생 예고 성당 전경.

 

2층 구조의 성당 아래층 중앙 동굴은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잉태에 관해 전해준 장소라고 한다. 누군가는 정확한 장소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학자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있었고 이를 피하고자 예수님과 관련된 흔적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기에 정확한 장소는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순례는 고고학 여정이 아니다. 예수님의 흔적을 찾아온 순례자들의 기도가 겹겹이 쌓여 있는 바로 이곳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며 기도를 바치는 것이 순례자의 자세가 아닐까. 비록 손에 든 카메라가 순례를 방해하기는 하지만 사진과 영상촬영 사이 짧게나마 기도를 바치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랐다.





주님 탄생 예고 성당 1층 내부와 천사가 마리아에게 주님 탄생을 예고한 동굴. 

 



가족과 함께 순례 온 아버지가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의 문을 가리키며 예수님의 일생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꼭 딸의 손을 잡고 이스라엘을 순례하며 신앙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졌다. (가만, 적금 만기가 언제지?)


2층은 나자렛 본당 신자들의 주일 미사를 봉헌하는 성당으로 이용된다. 1층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했고 지붕의 둥근 천장은 성모님을 상징하는 백합꽃 모양으로 설계됐다. 세계 각국의 전통 의상을 입은 성모님도 눈길을 끌었다. 성전뿐만 아니라 성당 마당 벽면에도 각국의 성모자상 모자이크가 있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성모자상 모자이크를 볼 수 있다. 이 먼 타국에서 한복을 곱게 입은 성모님의 모습을 보니 왠지 더 뿌듯하고 괜스레 행복했다. 집 떠난 지 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또한 그림과 같은 히브리어, 아랍어를 보다가 한글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한글이 최고다!



주님 탄생 예고 성당 마당 벽면에 있는 우리나라 성모자상 모자이크.

 





주님 탄생 예고 성당 2층 성전 내부.

 


1954년부터 1965년까지 프란치스코 수도회 고고학 발굴팀은 이곳에서 여러 유적을 발견했다. 사진은 발굴팀이 찾은 유적 모습. 바로 이 위에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성당을 뒤로하고 정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으니 나자렛의 마리아 국제 센터가 보였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였다. 만약 영어에 자신 있다면 꼭 가보길 권한다. 이곳은 프랑스 가톨릭 성령쇄신운동 단체 슈맹나프(Chemin Neuf)가 운영하는 곳으로 2009년 센터 건립 공사 중 예수님 시대의 주거지 흔적을 발견하며 화제가 된 곳이다.

 

이곳에서는 방과 정원, 물 저장소 등의 주거지와 다양한 그릇이 발견됐다. 나자렛의 마리아 국제 센터에서는 예수님 시대 유다인들의 생활 풍습과 성모 마리아에 관한 미디어 자료 등 다양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나자렛의 마리아 국제 센터 봉사자가 예수님 시대의 집터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센터 옥상에서는 나자렛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예수님 시대의 회당이 있던 곳에 세워진 성당을 볼 수 있다. 또한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의 웅장한 모습을 사진에 담기에도 좋다.



나자렛의 마리아 국제 센터 옥상 정원에서 바라본 주님 탄생 예고 성당




예수님 시대 회당이 세워진 곳에 있는 그리스계 가톨릭 성당. 바로 이곳이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신 곳이고 나자렛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다


나자렛을 충분히 순례하기에는 하루도 부족하다. 하지만 우리는 갈 길이 멀다. 아쉬운 마음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향신료와 이름 모를 꽃향기, 아랍인들의 체취가 느껴졌다.



신동헌 기자 david0501@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