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순례기 #8 포도주와 높은 산 - 카나·타보르산

2018-09-10 | 조회수 1825회






나자렛을 떠나 카나로 향했다. 차에 타 에어컨 바람을 쐬며 물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가이드는 다 왔다며 내리자고 했다. 차량으로 5분 남짓, 나자렛에서 북동쪽으로 약 8km 떨어진 지점에 카프르 칸나(또는 케파르 켄나)라 불리는 곳에 혼인 잔치 기념 성당이 있다.

 

성당을 향하는 길목에서 눈길을 끈 것은 포도주였다




혼인 잔치 기념 성당으로 향하는 길. 한적한 시골길 곳곳에 상점이 들어서 있다


'The First miracle'이라는 광고 문구를 보며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다고 하니 상인들에게는 상품이 되겠다 싶으면서도 왠지 관광지 냄새가 나는 듯해 씁쓸했다.






카나의 혼인 잔치 기념 성당 전경과 내부.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 도착한 혼인 잔치 기념 성당 내부는 아늑했다. 여섯 항아리가 감실 주변에 위치하고 혼인 잔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성화가 성전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혼인 잔치 기념 성당 제대 모습.



 이곳에서 순례자들의 혼인 갱신식이 가끔 거행된다. 예약만 하면 누구든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와야 가능하겠지. 이스라엘 취재 일정 소식을 부인에게 전하며 약속한 것이 있었다. 혼인 반지를 혼인 잔치 기념 성당에 가져가 꼭 사진을 찍어가겠다는 것이었다. 나자렛에서 일정이 늦어져 다음 장소로 급하게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성당에 머무른 시간이 20분 남짓했다. 급한 마음에 사진과 영상을 닥치는 데로 찍고 부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부인과 기자의 혼인 반지를 혼인 잔치 기념 성당을 배경으로 찍었다


 아무 의미 없는 그저 기자의 못생긴 손가락만 보이는 사진을 찍었다. 마음이 급하다는 핑계도 있지만 조금 더 천천히 둘러봤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부인에게 사진을 설명하며 꼭 함께 이곳을 가자고 약속해 버렸다. 적금을 깨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타보르산 정상에 위치한 주님의 거룩한 변모 기념 성당.


 카나에서 다시 차를 타고 타보르산으로 향했다. 타보르산은 해발 588m. 경기도 동두천시에 있는 마차산과 높이가 같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고는 하지만 주변보다 워낙 높이 있어 주변 경관을 잘 볼 수 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장소에 관해 높은 산또는 그냥 이라고만 기록돼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가 구두로 전승된 전통에 따라 타로브산 정상에 조그마한 경당을 세우면서부터 이곳을 찾는 발걸음이 늘어났고, 348년 예루살렘의 치릴루스 주교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순례지가 됐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기념 성당 내부.



 1924년에 완공된 지금의 성당은 웅장했다. 하지만 천천히 생각해 보니 성당이 주는 웅장함이 아니었다. 타보르산 정상에서 느낀 것은 압도 된다는 표현이 정확할 듯하다. 주변의 자연경관과 묘한 조화를 이루는 성당과 그 성당 내부에 있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담은 성화를 보며 하느님의 영광에 압도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내 베드로 사도의 고백을 떠올렸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마르 9,5)

 

베드로 사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다른 제자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고 성경은 전한다.(마르 9,6 참조) 눈을 감고 조용히 묵상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기념 성당 내부와 중앙 제대 위 주님의 변모 성화




예수님께서 세상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할 새하얀 옷을 입고 아주 잠시 신성을 드러내셨다. 그 앞에 서 있는 나는 감히 고개를 들어 주님을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느님이 계신 곳, 바로 천국이 눈앞에 펼쳐졌으니 어찌 이곳을 떠날 수 있겠는가.

 

주님 감히 청하건대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는 고백조차 할 수 없지만 주님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받아주시옵소서.” 



주님의 거룩한 변모 기념 성당 야외에서 바라본 이즈르엘 평야.


짧은 시간이었지만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에 관해 묵상할 수 있어 행복하고 또 부끄러웠다. 그런 주님 앞에 나의 모습은 어떤지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 나가기 참 부끄러운 이 몸이지만, 이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은총 아니겠는가. 타보르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큰 성당도 아니고, 넓은 평원도 아니며. 유적도 아니었다.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바로 이곳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으며 우리 또한 그 죽음과 부활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셨다는 사랑이었다.

 

순례는 단순히 보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만나기 위해서 가는 것임을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신동헌 기자 david0501@catimes.kr